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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과 남겨진 것 사이를 바라보다…이원호 개인전 《얄궂게 파란》

heeartchoi 2026. 8. 27. 20:09

목차


    1.오만가지_다채널 영상(49개의 에피소드)_2021/갤러리인터페이스 부산

     

    일상의 평범한 사물과 공간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가치와 규칙을 다시 바라보는 전시가 부산에서 열립니다.

    갤러리 인터페이스는 오는 2026년 9월 18일부터 10월 10일까지 이원호 작가의 개인전 《얄궂게 파란》을 개최합니다.

    이원호 작가는 회화와 조각의 전통적인 장르를 넘어 설치, 공공미술, 전시기획, 무대미술, 영상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입니다.

    특히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사물과 장소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 안에 내재된 가치와 사회적 관계, 규칙과 경계에 대해 꾸준히 질문해왔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오랫동안 작업의 소재로 다뤄온 ‘파란색 이삿짐 플라스틱 박스’와 ‘고방유리’​를 중심으로 가치와 이동, 소유와 폐기, 정착과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냅니다.

     

    평범한 ‘파란 박스’가 던지는 질문

    누구나 한 번쯤 이삿짐이나 물류 현장에서 보았을 법한 파란색 플라스틱 박스가 이번 전시의 중요한 소재로 등장합니다.

    파란 박스는 이사와 물류 현장에서는 물건을 이동시키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지하철 이동상인에게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압수수색 현장에서 사적인 기록을 수거하는 제도의 용기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같은 물건이지만 어떤 장소와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원호 작가는 이러한 변화에 주목합니다.

    무언가를 담는다는 것은 동시에 무엇을 담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소중한 것을 보호하는 동시에 원래의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기도 하고, 정착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언제든 다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작가에게 파란 박스는 보호와 노출, 정착과 이동, 소유와 폐기, 허용과 금지​처럼 서로 상반되는 상태를 동시에 품고 있는 하나의 장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작가는 바로 이 질문에서 작업을 시작합니다.

     

    무엇이 사물을 가치 있게 만드는가

    이원호 작가는 오랫동안 사물과 장소의 가치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그 가치를 가능하게 하는 규칙과 경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탐구해왔습니다.

    걸인의 동냥그릇, 감정가를 잃은 골동품, 노숙인의 박스 집, 운동장의 흰 선, 부동산과 집, 문을 닫은 상점의 간판 등 작가가 선택한 대상은 대부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사물과 장소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억지로 부여하기보다 이미 우리 사회가 부여해놓은 의미와 관계를 조금씩 움직여봅니다.

    사고팔고, 옮기고, 지우고, 수집하고, 펼치거나 다시 놓는 과정에서 사물의 위치와 관계가 달라지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가치의 기준과 사회적 규칙도 흔들리게 됩니다.

    결국 작가가 계속해서 던지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무엇이 어떤 것을 가치 있게 만드는가?”

    같은 사물이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간직해야 할 소중한 것이 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폐기해도 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원호 작가는 바로 그 판단과 판단 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바라봅니다.

     

    고방유리 너머에 남겨진 기억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소재는 고방유리입니다.

    고방유리는 작가가 오래전 살았던 집의 현관문에 있던 유리입니다.

    그러나 그 집은 재개발로 사라졌습니다.

    집은 사라졌지만 그곳에서의 기억과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그 집에서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고방유리를 통해 세계가 어떻게 보였는지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사라졌거나 이미 끝났다고 판단한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여전히 현재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질문합니다.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보이지 않게 된 것을 단순히 다시 보여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이는 것과 알 수 있는 것 사이에 남아 있는 거리를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 거리와 틈은 결핍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굳게 믿어왔던 판단이 잠시 멈추고 다른 시간과 관계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됩니다.

     

    과거의 작업에서 이어지는 ‘파란 박스’

    파란 박스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등장한 소재가 아닙니다.

    이원호 작가의 2019년과 2023년 작업에서도 파란 박스가 등장했습니다.

    2019년에는 지하철 이동상인의 비공식적인 유통과 순환의 질서를 바라보는 매개가 되었으며, 2023년에는 무엇을 이동시키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선택을 통해 소유와 폐기, 선택과 배제의 문제를 다뤘습니다.

    이번 《얄궂게 파란》에서는 그동안 파란 박스 안에 잠재되어 있던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펼쳐냅니다.

    가치와 규칙, 소유와 이동, 장소와 경계라는 기존의 질문을 우리가 보고, 기억하고, 남기고, 버리는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전시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남기며 무엇을 지워가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수미술을 넘어 공연예술까지

    이원호 작가의 활동 영역은 회화와 조각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설치와 공공미술, 전시기획은 물론 무대미술과 영상디자인까지 폭넓은 예술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세종문화회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립정동극장 등에서 무대미술과 미술감독, 영상디자인을 맡으며 순수미술과 공연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여왔습니다.

    또한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전시공간에서 작품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를 구축해왔습니다.

     

    국내외 주요 전시와 수상

    이원호 작가는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독일 슈투트가르트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조소를 전공했습니다.

    이후 서울과 부산을 비롯해 국내 주요 미술관과 전시공간에서 꾸준히 개인전과 그룹전을 이어왔습니다.

    개인전으로는 2025년 수원의 예술공간 아름에서 열린 《뒷》, 2023년 성남 오픈스페이스 블록스의 《서식지》, 2022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Brigitte March Gallery의 《let’s stay in unknown》, 2021년 서울 자하미술관의 《오만가지》, 2019년 페리지갤러리의 《적절할 때까지》 등이 있습니다.

    그룹전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북서울미술관, 아르코미술관 등 주요 기관의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특히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의 《ARTISTFILE 2015: 동행》과 일본 국립신미술관의 《ARTISTFILE 2015: Next Door》,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광장전》, 2022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한국민중미술특별전 등에 참여하며 작품 세계를 넓혀왔습니다.

    또한 2022년 제71회 서울시 문화상 미술 부문을 수상했으며,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고양창작스튜디오, 금천예술공장, 신흥공공예술창작소, 홍은예술창작스튜디오 등 여러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현재는 경성대학교 현대미술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 너머를 생각하게 하는 전시

    이원호 작가의 《얄궂게 파란》은 거창한 소재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란 플라스틱 박스와 오래된 집의 고방유리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사물들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가치와 규칙, 소유와 이동, 기억과 망각에 관한 질문이 이어집니다.

    무엇을 남길 것인지, 무엇을 버릴 것인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 것인지에 대한 판단 역시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규칙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익숙한 질서를 잠시 멈춰 세우고, 그 틈에서 다른 가능성을 바라보게 합니다.

    평범한 사물 하나가 우리 사회와 삶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는 과정이 궁금하시다면, 부산에서 열리는 이원호 작가의 개인전 《얄궂게 파란》을 직접 만나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전시 정보

    전시명: 이원호 개인전 《얄궂게 파란》
    전시 기간: 2026년 9월 18일 ~ 10월 10일
    전시장소: 갤러리 인터페이스, 부산
    작가: 이원호

    평범해서 쉽게 지나쳤던 사물이 어느 순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경험을 만나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사물과 공간, 그리고 그 안에 남겨진 기억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